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 진행 중인 한국 자동차·배터리 기업들의 합작 공장 건설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소비시장 중 하나이자 전기차 보급 확대를 위한 중요한 거점으로 꼽히며, ‘현지 생산’은 시장 접근성을 높이고 미국 정부의 인센티브를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전략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지 공장 건설 과정에서 드러난 현실은 이 전략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숙련된 인력 부족, 제도적 미비, 문화적 차이까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우리 기업들의 부담을 키우고 있는 것입니다.
숙련 인력의 부족과 현장 운영의 어려움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전문성을 갖춘 노동자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특히 배터리와 반도체, 자동차 전기화 부품처럼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는 산업 분야는 단기간 교육으로 인력을 육성하기 힘듭니다. 실제로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에서는 클린룸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현지 직원들이 다수 있었다는 증언이 보도되었습니다. 클린룸은 먼지 한 톨이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배터리 제조 과정에서 필수적인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이해조차 부족한 인력이 현장에 투입된 것입니다.
이는 미국 제조업 생태계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1980년대 이후 미국은 제조업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숙련 노동자 기반이 붕괴되었습니다. 현지에 공장을 짓더라도 숙련도를 갖춘 인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안정적인 생산 체계를 구축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한국 기업들은 핵심 장비 설치와 운영을 위해 한국 본사 인력을 파견해야 했고, 이는 현지화 전략의 본래 취지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장비 한 대를 세팅하는 데 수년간 경험이 필요한 경우도 많아, 단기적 인력 충원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셈입니다.
제도와 정책의 한계, 현지화의 딜레마
미국 정부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현지 생산을 조건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대차, LG에너지설루션, 삼성 SDI, SK온 등 한국 주요 기업들이 앞다투어 미국 현지 투자를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정책적 인센티브만을 보고 진출했을 때 예상치 못한 제도적 공백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력 양성 제도의 미비입니다. 미국 정부와 일부 주 정부는 외국인 기술자를 불러와 현지 근로자를 교육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이는 체계적인 시스템이라기보다는 임시방편에 가까웠습니다.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른 전기차·배터리 산업에서 몇 개월 교육으로 숙련도를 갖추기는 어렵고, 인력 충원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또 다른 한계는 노사관계입니다. 미국은 강력한 노동조합 전통을 가지고 있고, 최근 UAW(전미자동차노조)는 전기차 공장까지 협상 범위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기업들에게 임금 부담, 근무 조건 개선, 노사 협상 등 추가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현지화 과정은 단순히 ‘공장을 세운다’는 차원을 넘어, 제도·노동·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복합 과제가 되었고, 이로 인해 기업들은 예상보다 더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복합적 부담
이러한 구조적 현실은 한국 기업들의 부담으로 직결됩니다. 우선, 초기 투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습니다. 공장 건설 자체도 수십억 달러가 투입되지만, 숙련 인력 부족으로 인해 한국에서 엔지니어를 장기간 파견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추가 비용이 발생합니다. 또한 숙련 인력 파견은 단순히 비용 문제를 넘어 인력 유출이라는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 내 생산 거점에서 핵심 인력이 빠져나가면 국내 공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일정 지연의 리스크입니다. 미국 현지 공장이 계획대로 가동되지 못하면 전기차 공급망 전체에 차질이 생깁니다. 특히 전기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생산 차질은 곧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운영상의 문제입니다. 한국 기업들은 ‘속도’와 ‘정밀성’을 강조하는 경영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미국 현장은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근무 문화와 강한 근로자 권리를 기반으로 합니다. 이 차이는 작업 효율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초기 안정화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미국 현지 공장 건설은 단순한 투자가 아니라 국가 간 산업 생태계 차이를 극복해야 하는 과제임이 분명해졌습니다. 인력 부족, 제도적 한계, 문화적 차이까지 겹치며 한국 기업들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미국 내에서 장기적으로 새로운 제조업 기반을 다시 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한국 기업들은 초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숙련 인력 양성, 장비 운영 노하우 전수, 노사관계 조율 등을 통해 서서히 해법을 찾아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