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일본산 자동차에 적용되는 관세를 조정했습니다. 16일부터 일본산 자동차에 15% 관세가 적용되는 새로운 실행 안이 발표된 것인데요, 자동차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으로서는 큰 위기를 피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알려진 협상 조건을 자세히 보면, 단순한 관세 조정이 아니라 일본에 매우 불리한 계약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이 요구한 투자 조건의 충격
협상의 핵심은 단순히 관세율에 있지 않았습니다. 미국은 일본에게 5,500억 달러(한화 약 759조 원)라는 거대한 투자금을 요구했습니다. 일본은 이 자금을 두 달 이내에 미국이 지정하는 계좌에 현금으로 입금해야 하고, 이렇게 모인 돈은 미국이 원하는 분야에 투자됩니다. 더 충격적인 부분은 투자 수익 배분 구조입니다. 초기에는 미국이 한 푼도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수익을 5:5로 나눈 뒤, 원금이 회수되는 시점부터는 일본이 10%,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계약이 체결된 것입니다.
이 협상안에 서명한 이시바 전 총리는 결국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하지만 총리가 퇴진했더라도 계약 자체는 남아 있어 일본은 앞으로도 이 불평등한 조건에 묶일 가능성이 큽니다.
관세와 계약 조건의 불평등성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협상 조항에는 조금이라도 입금이 지체되면 언제든 다시 관세를 인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일본은 자금을 제때 마련하지 못하는 순간 추가적인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사실상 '노예 계약'에 가까운 조건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라면 일본은 언젠가 재정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입금을 거부하거나 지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미국은 이를 빌미로 다시 보복 관세를 부과할 수 있고, 양국 간 무역 분쟁은 불가피하게 재점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더 나아가, 설령 일본이 성실하게 조건을 지킨다고 해도 미국,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적인 요구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국제 협상의 교훈과 파급 효과
이번 사례는 단순한 미·일 간 무역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유럽이나 한국이 일본과 보조를 맞추어 공동 대응했더라면 미국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협상 과정에서 고립감을 견디지 못하고 서명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다른 국가들은 "일본도 했는데, 너희는 왜 하지 않느냐"라는 압박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는 전형적인 죄수의 딜레마와 같은 협상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협상에서는 늘 '급한 쪽'이 을이 됩니다. 일본은 자동차 산업이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미국 시장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압박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남긴 계약은 앞으로 일본 경제뿐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산업 질서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큽니다.
필자의 생각
이번 협상 결과를 보면서, 국제 협상에서 전략적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느낍니다. 혼자 살아남으려는 선택이 단기적으로는 위기를 피하는 방법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큰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급한 불을 끄는 대신 불평등 계약이라는 족쇄를 차게 되었고, 다른 나라들에게까지 부담을 떠넘긴 셈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의 무역·자동차 협상에서 비슷한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본의 사례를 교훈 삼아, 단독 대응보다는 유럽과 같은 주요 교역국과 협력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협상은 결국 힘의 균형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힘의 균형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할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